
시대를 앞서간 가수로 평가를 받고 있는 탑골 지디 가수 '양준일' 프로필 안내해 드립니다, 양준일은 프로필상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수 수유동 출생으로 되어 있으나 부모님의 사업영향으로 베트남에서 출생해서 홍콩, 일본, 한국에서 살다가 9살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입니다.

양준일은 1969년 8월19일 생으로 올해 나이 51세입니다. 키는 178.4cm로 나와 있는데 비쥬얼이 좋아서인지 프로필 보다는 더 키가 커보이는 느낌이드는데요, USC재학시절에 당시 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왔던 이범희 작곡가 눈에 띄어 한국으로와서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작곡가 이범희가 총괄 제작을 맡아 8곡 전곡을 제작해서 양준일의 공식 1집 앨범을 내게 되는데요. 당시에 마른체형, 춤추는 모습, 패션스타일에서 마이클잭슨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시절 한국에서 생활했던 기간이 적어서 1990년대 예능에 출연했을 당시 발음이나 단어선택을 잘 못해서 지금 방송을 봐도 대부분 웃고 있는 모습으로 많으 보여지고 있는데요, 노래 자체는 당시 한국노래와 다르게 미국스타일에 가장 접근해 있어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중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나이트클럽에서 인기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개국한지 얼마 안되었던 SBS에 출연을 많이 했었는데요, 당시 SBS의 음악프로그램인 쇼! 서울서울에서는 고정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출연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 서울및 수도권에서만 본방송 시청이 가능했던 상황이라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더군다나 당시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았던 상황에 발표한 2집 가나다라마바사 역시 당시 시대를 초월한 패션과 여린 미형외모에 마른체구와 긴 파마머리까지 해서 그런지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했습니다.


비록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가 공연비자 문자로 찾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 연장을 거부하는 바람에 가수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데요. 당시 유효기간 10년짜리 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6개월마다 비자에 도장을 찍어야 해서 갔던 관리사무소에서 담당직원이 당신이 한국에서 돈 벌고 사는게 보기 싫다, 당신 자체를 보기가 싫어서 도장 못 찍어준다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촌스럽지 않은 패션으로 괜히 탑골지디가 아니라는 평가를 많이 받을만큼 패션 감각역시 뛰어난데요, 본인만의 패션감각을 살려 쟈이 컬렉션(JIY COLLECTION) 패션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소량으로 물건을 떼다가 파는 방식이라 한정판을 구매하는 식이라 구매자들한테는 좋은 반응을 얻게 되지만, 1997년 외환위기에 맞물려 폐업을 하게됩니다.


가수의 꿈을 놓지않던 "양준일"은 예전에 활동했던 리베카와 가나다라마바사 이미지에 음반제작사들이 거부감을 가지자 짧은 머리에 벌크업을 한 몸매로 V2로 컴백을 하게 되는데요, 당시 호응은 좋았으나 방송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해서 노래를 부른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게되면서 가수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019년 12월 6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3를 통해 다시금 방송에 출연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양준일 신드롬이 일어나게 되죠.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은퇴 후 그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가수 은퇴후 일산에서 가정집에 아이들을 초대해 14년동안 공부방 형식으로 영어를 가르키기도 했다고 했는데요, 우리 나라 입시위주의 학습방법이 아니라서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때 당시 채팅으로 현재의 부인을 만나 2006년 결혼을 하게되고, 결혼 생활 10년만에 늦등이 아들을 가지게 되지만, 어려운 현실에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슈가맨 방송이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미 신드롬이 일어난 뒤라 팬들이 직접 양준일이 일하는 식당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방송에서 러브콜이 쇄도해서 고민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팬들을 대하는 마음또한 남다르다고는 일화에 자주 언급이 되기도 하죠, 일단 팬들을 부르는 애칭 역시 "My Queens & Kings", 그리고 1집 활동을 끝내고 미국에서 갔다가 잠시 한국으로 왔을때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팬들의 부모님이 공부에 방해된다고 혼내서 더이상 전화하는걸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때 연락이 닿았던 팬들과는 함께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자장면을 먹으면 2집 데모테이프를 같이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당시 그는 식당 서버로 근무하던중에 평소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팬이 나는 오빠의 삶의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오빠는 연예인이 아닌 슈가맨이에요. 그래서 슈가맨에 출연해야 해요 라고 했다고 해서 출연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할 정도인데요.
지금은 본격적으로 한국 생활을 준비중이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전 인터뷰에는 한국 거주 자금을 만들었다고 나왔는데요. 2020년 3월 14일 쇼! 음악중심에 리아킴과 'Dance with me 아가씨' 콜라보 무대를 선 보이고 하고, 2020년 5월 9일,10일에 열리는 2020 청춘 페스티벌에 출연한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취소될 가능성이 크네요. 한국에서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가수에서 그동안의 설움과 차별을 잊고 더욱더 좋은모습으로 대중에게 좋은 음악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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